나무꾼과 개구리

Posted by Lily Vaughan DIARY_2013 : 2013. 11. 22. 11:25

나무꾼과 개구리 이야기

- 최명희의 혼불 中에서, 이기채가 청암 부인에게 들려준 이야기-


옛날 옛적에 나무꾼이 하나 살았더랍니다. 미장가 총각인지 각시 거느린 서방인지는 몰라요.
그런건 안 나온게로, 그냥 나무꾼이라 부르지요. 하루는 그가 숲으로 나무를 하러 가서 지게
에 도시락을 달랑 매달아 세워두고 열심히 나무를 했더라지요. 뚝딱뚝딱 나무를 하다보니 어
느덧 배가 출출. 때가 된 것이어요. 그래 이 나무꾼이 도시락을 펼쳐드는데 볼품없는 깡보리
천지였지만 군침이 꿀꺽, 세상에 그보다 맛난 음식은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요. 한 숟갈을 푹
떠서 입에 넣으려는 찰나, 저만치 앞쪽에 뭐가 옹송거리고 앉았는 것이 보이더랍니다. 가만
보니 나무꾼 커다란 주먹만한 개구리였어요. 개구리가 앉아서 빤히 나무꾼과 눈을 맞추고 앉
아있는 게 아니겄어요? 얼마나 지나도록 나무꾼도 개 구리를 쳐다보았지요. 그러다 문득, 도
시락에 담긴 밥을 보는 것인가 하는 데 생각이 미쳤어요. 저것이 아무리 미물이래도 밥 한술
적선하면 그것도 다 내 공덕이 되지 않으랴.

워쪄 밥 묵을래? 밥 묵자. 나무꾼은 깜짝 놀랐어요. 웬놈의 개구리가 말을 다 하네요. 그래 얼
떨결에 밥을 한 숟가락 내미니 낼름 받아먹는 거에요. 이거봐라? 나무꾼이 또 한 숟가락을 내
미니 또 낼름. 싱겁냐? 싱겁다. 아나 건건이. 나무꾼이 반찬을 집 어주자 고것도 낼름. 짜냐?
짜다. 그러믄 건건이를 먹었응게 밥을 먹어야지. 또 밥을 한 숟가락 멕이고 싱겁냐? 싱겁다.
그라믄 건건이. 짜냐? 짜다. 여기 밥. 아 그러다보니 어느새 밥통이 훌쩍 비어버린 거에요.
게다가 서산 저편으로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. 그제사 나무꾼은 정신 이 퍼뜩 들었어요.
시방 내가 뭐하는 거여, 이게 무신 미친 짓이래. 뭐에 홀렸지 싶어지자 나무꾼은 다리가 후들
거려 대강 나뭇 짐을 얽어매고 허적허적 산을 내려갔어요. 그런데 이를 어째요. 개구리가 폴
짝거리며 따라오네요. 나무꾼이 갑자기 겁이 덜컥 나는 거에요. 저거이 어쩌자고 나를 따라
온댜, 암만그라도 산을 다 내려가도록 끝까정 따라오든 않겄지. 그러나 산을 다 내려 가 어느
삼거리 마을 초입에 다 다랐는데도 개구리는 여전히 따라오는게 아니겄어요? 이젠 나무꾼 이
마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요.

저거이 집까지 쫓아오면 참말로 워쪄, 하면서 여전히 걸음을 옮기는데 저만치 삼거리 모퉁
이에 초상집이 보이는 거에요. 옳거니, 저 안으로 들어가면 경황없는 와중이라 나를 잃어
버리고 못 쫓아올겨. 나무꾼은 얼른 초상집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자리를 찾는 척, 슬쩍 뒷
문으로 해서 용케 빠져나왔어요. 아닌게 아니라 개구리는 사람 많은 데라 나무꾼을 잃어버
렸는지, 더 이상 쫓아오지를 못했지요.

세월이 흘렀어요. 나무꾼은 그 산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지요. 한 이삼년 지나니까
쪼께 궁금해지기도 했지만, 어이구 아직도 생각만 하면 등골에 식은땀이 나는 걸요. 칠팔
년 지나도 무섭긴 매한가지. 그러다 한 십년 지나니까, 이젠 궁금한 가운 데 무섭다는 마음
보다 괜찮겄지 하는 마음이 앞서드라지요. 세월이 이만큼이니 지났는디, 어디 세월 앞에 장
사 있간디? 그래 그때 기억을 되짚어 가다보니 예전에 개구리를 떼놓았던 삼거리 마을 쯤
됨직한 곳에 이르렀는데 아 글쎄, 지형은 비슷한데 옛날의 그 마을은 어디로 종적을 감춰버
렸는지. 이거이 어찌된 일이랴, 분명히 여그가 맞는디. 어림짐작하며 사방을 둘러보던 나무
꾼은 옛날 초상이 났던 집 근처에 허름한 초가집을 하나 발견했어요. 지붕은 몇 년이나 갈지
않았는지 짚단이 썩어나 게 생겼고 대문에도 먼지가 수부룩. 그래도 삐걱 대문이라고 생긴
것을 열어보니 반갑게도 마루에 웬 할머니가 하나 앉아 있는 거에요.

할머니, 말씀 쪼까 여쭤볼랑게요. 한 십 년전 여그서 초상이 났던 집이 하나 있었든가 싶은디
고게 무신 연기도 아니고 어디로 사라져 버렸당가요. 분명 그 마을이 맞는 것 같은디요. 맞다.
여그가 삼거리 마을이다. 그라믄 그 집 소식을 혹 아신당가요, 그 초상날 혹시 웬 개구락지
하나 들어왔단 말쌈 못들으셨능가요. 왜, 그노무 개구락지가 초상 치르던 상주에다가 그집
식구까지 홀랑 물어죽여서 줄초상이 났지. 어이구 그 뿐인가, 동네가 다 그 개구락지한테 잡
아먹혔응게로 워찌 그걸 모르겄어. 나무꾼이 모골이 송연해지는 거에요. 허이구, 내가 그것
을 델꼬 갔으면 참말로 큰일이 날뻔 했당게.

그래도 아직 궁금한 게 있었지요. 할머니, 그 개구락지는 어떻게 됐으까요잉. 그러니까 그 할
머니가 와락 돌아앉으며 두 손을 할퀼 듯이 치켜들고 앙칼지게 내뱉는 거에요. 그거이 나다
이놈아. 그러고서 불문곡직 나무꾼을 물어뜯으려 하니 나무꾼이 혼비백산. 워째 그라요, 내가
도대체 뭘 죽을 죄를 졌다고 그라요. 나는 싸들고 간 도시락 나눠먹은 죄밖에 없는디 공치사는
관두고라도 워째 이럴 수가 있당 가요.

이놈아 그게 바로 니 죄니라. 한 번 친구 해주고 도망할 거 말은 왜 붙여주었느냐. 한 번 주고
말 거 밥은 왜 떠멕여주었느냐. 그저 불쌍한 맴에 한 번 노나줄 양이었으면 한 덩이 뚝 떼어
서 던져주고 말 일이제, 싱겁냐 짜냐 간까지 맞춰 가매 워째 그리 다정하게 굴었드란 말이냐,
그 뿐이냐 일단 버리고 갔으면 잊어뿔고 잘 살든가 할일이제 워째 돌아보긴 돌아본당가. 씰데
없이 헤프게 마음 뿌려 그 마음 받은 사람 가슴 속 시꺼멓게 썩게 한 거이, 그게 바로 니 죄란
말이다 이놈아! 그러고는 그만 할머니, 아니 그 개구리는 나무꾼을 물어뜯고 물어뜯음으로서
그렇게 소리소리쳐 울었더래요. 그 울음소리가 시방도 딛긴당만. 거 그가면. 꽤악, 꽤애악, 꽤악.

 

-  청암 부인의 대답 -


사물은 제 각각 제 모습이 있고, 할 일이 있고, 제 몫이 있는 것이다. 사람 아닌 것하고 사람 말
을 해 보려 한 것이 첫째 어리석고, 아 나무꾼이 저 살아갈 궁리요, 방편인 제 나무조차 안하면
서 개구리 동무를 해 준 것이 둘째 어리석고, 저 먹으란 제 밥을 저는 하나도 안 먹고 개구리한
테 바닥까지 다 내준 것이 셋째 어리석다. 그것이 산에 가서 드리는 고수레라 해도 지나치고 가
여운 미물에 대한 동정심이라 해도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과한 것이니라. 내 것이 실한 연후에
남이 있는 것이다. 그러고 밥을 주었으면 그냥 주었지. 싱겁냐, 짜냐, 일일이 간 맞추고 비위 맞
추어 물어 보고, 그 미물의 뜻을 들어주고, 한 것이 넷째 어리석음 이다. 다만 헤아릴 뿐 묻지는
말아야 한다.

베풀고 냉정해야 사람들은 어려워해. 평생토록 책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섣부르게 베푸는
시늉하는 것은 오히려 무서운 원심의 근원이 되기 쉬운 즉, 이런 어리석음은 결코 저질러서는 안
된다. 다섯째 어리석음은 제 잘못으로 인하여 남의 집을 망치고, 남을 죽이고, 남의 온 동네까지
쑥밭으로 망친 일이다. 헌데, 이 나무꾼의 제일 큰 어리석음은 무엇인 줄 아느냐? 한 번 벗어난
아가리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, 그 끈에 매달려 다시금 그 처음 아가리로 대가리를 밀고 들어
간 일이니라. 

 

 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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